The Path is Clear

** 초벌번역이라 매우 거칩니다.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


Chapter 2


세상 Earth


모든 세대에 걸쳐 인간의 마음을 구름처럼 뒤덮고 있는 어둠의 음모dark conspiracy가 있다고하자.  이 음모야말로 악의 현현incarnation이며 인간의 감성, 일, 생각, 발언 등의 상당한 부분을 조종control하고 있다.  이것은 수백 수천만의 죽음과 여태까지 살았던 거의 모든 인류의 노예화slavery에도 책임이 있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딱 한개의 원칙principle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 바로 당신이 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 - 이 책은 당신에게 세상이 정말 어떤 곳인지를 볼 수 있게하는 시각을 제공해 줄 것이다.  이렇게 한 번, 그리고 영원히 앎으로 인해 어둠의 음모는 강해지지 않고 약화되며 악은 더 이상 자라나지 않고 죽게 될 것이다.


원리와 법 Principle versus law

악이 사람들을 어떻게 조종하는지 알기 위해 원리과 법이 어떻게 다른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원리란 자유를 만드는 진리이다.  법은 노예를 만드는 거짓이다.


원리는 현실을 반영한다.  원리는 당신이 당신의 세계를 올바르게 세울 수 있게 도와주는 지식이다.  당신이 지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당신이 하는 모든 것에서 원리를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이 배우는 모든 진실된 것true thing은 모두 원리이다. 당신 손의 움직임이라던가 어떤 음식이 맛이 있는지, 수학과 친구에 대한 연민 등 이 모든 것들이 원리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들이다.


법은 인공적인 개념으로써 악인evil men들에 의해서 사람들의 생각과 해석understanding을 제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법은 권위authority라는 탈을 쓰고 뒤에 숨에 마치 법이 원리인냥 가장한다.  사람들이 법을 원리와 혼동하기 시작하게되면 그들의 자유는 제한되고 만다.  사람들이 진리를 권위의 개념과 혼동하기 시작하면 그들의 능력과 지혜는 작아지게 된다.  이 것이 바로 법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열역학thermodynamics에서 원리의 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액체는 기체보다 차갑다.  이것이 하나의 원리이다.  이것이 원리이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를 제한하지 않고 반대로 우리에게 어떤 것을 할 수 있게 한다.  즉, 이 원리를 이용해 기체와 액체사이에서 한 물질을 응축시키거나 팽창시켜서 냉장고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원리를 가지고 우리는 이해를 더 높히고 힘을 더 가질 수 있게 된다.  원리는 자유함을 만들어내는 진리이다.


반대로 법의 일례로 충성심royalty에 대한 문화를 들 수 있다.  평민은 왕에대해 경의hommage를 표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법이다.  이것이 법이기 때문에 법은 자유를 파괴하고 노예를 만들어낸다.  이 법 아래서 개인의 생각과 발언, 그리고 행동은 무시당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평민들은 자신들이 왕보다 무익worth less하다고 믿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리와는 정반대로 법에는 진리가 없음을 주목하기 바란다.  왕에게 무례disrespect하는게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그렇게 하게 되면 법을 깨뜨리는게 되고 만다.  법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에 법은 반드시 강제적으로 강요되어야만 한다.  법은 그것이 거짓이기 때문에 자유를 파괴한다.  원리는 그 반대로 그 자체가 지식knowledge이기 때문에 자유를 만들어낸다.


그 자유를 파괴하는 것이 악이다.


단순함 Simplicity

세상은 보이는 것 보다 단순하다.


복잡함이라는 것은 우리 문화와 정치와 경제등의 모든 면에서 발견된다.  사람들은 매일 우리 세계의 새 개념과 파생물spin, 새 관점또는 새 증상등을 매일 맞이하게 된다.  이중 다수의 개념은 원리를 왜곡perversion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특정한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인위적으로 고안engineer된 것들이다.


악한 사회들은 사람들의 자유로운 사고를 파괴하기 위해 방법들을 고안한다.  이러한 예를 역사에서 찾아본다면 사회주의socialism, 파시즘, 인종차별주의racism, 공산주의communism, 민주주의democracy, 계급투쟁class warfare, 정치적 교정political correctness, 도덕적 적절성propriety, 체면decency, 충성royalty, 테러리즘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개념들은 하나할 것 없이 모두 완전히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 진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노예화된 피해자들의 마음을 혼란시키기위한 도구인 것이다.


당신은 당신 주위 세계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당신의 지성은 제한받지 않는다. 당신이 이해하고 있는 것을 뒤틀고 복잡하게 만들어버림으로해서 악인들은 당신을 조종control하는 것이다.  악은 당신이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할 능력이 없다고 믿게끔 만들기를 원한다.  당신이 당신 자신의 가치가 얼마만큼인지를 알게될 때, 악은 실패하게 될 것이다.


지성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데 있어 두가지의 원리를 관련지을 수 있다.  그 첫째가 단순함simplicity이다.  단순함의 원리는 지성은 진리를 인지한다는 것을 말한다.  어떤 진리라도 그것이 순수한 형태로 제시된다면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당신이 배울 수 없는 진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지성은 진리를 인지한다는 단순함의 원리이다.


두 번재의 원리는 불명료화obfuscation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불명료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리를 왜곡하는 것이다.  명료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진실을 감추기위해 잘못된 생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때때로 이것은 원 진리의 본질 위에 단순히 개념하나를 덧붙힘으로써 그것을 왜곡시키기도 한다.  심지어는 완전히 적절하다고 보여지는 개념들도 단순한 진리를 덮어버리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말이다.


불명료화는 악에 의해 사용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하게 만든다.  불명료화는 원리를 비비꼬아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원리를 배울 수 없도록 만든다.  악이 불명료화를 사용하여 당신이 지혜를 얻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당신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다.  문화라는 것은 인위적으로 만든 복잡함에 사람들이 촛점을 맞추게 되면 진실을 별로 발견하지 못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어린이들이 자라나면서 배우게 되는 복잡해 보이는 사상들은 원래 기본적이고 단순한 원리들이다.  한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이 보여졌던 것이 한 번 이해하고 나면 굉장해지는 때가 있지 않은가.  지혜wisdom을 얻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 지혜를 가지고 당신은 어떤 일이든 할 수 있게 된다.


당신이 자신의 열등감에 대한 관념을 벗어버릴 때 당신의 지식에 대한 탐구가 쉬워질 것이다.  악은 불명료함을 이용해 사람들이 열등감을 느끼도록 만든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전혀 열등하지 않다.  또한 어떤 사상에 대해서도 전혀 열등하지 않은 존재다.  당신은 무한한 가지를 지닌 사람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Who you are

한 사람의 인간으로써 당신은 매우 특별하다.  당신은 무기물mineral도 아니고 지구상의 어떤 식물이나 동물과도 다른 존재다.  그 어느 것도 당신이 가진 지성과 같은 능력이 없다.  그 어느 것도 꿈을 성취하기 위한 완벽하고 전체적인 아먕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 어느 것도 당신이 소유한 지식을 향한 욕구나 갈증이 없다.  당신은 인간이다.


당신의 본성에 한계란 없다.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나 행복을 느끼는 것에 대한 능력의 한계란 없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써 당신 자신의 의지가 아닌 그 어떤 것에도 복종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배우고 성장하는데 허가가 필요하지도, 호의나 면허가 필요하지도 않다.  당신이 열망하는 것은 당신의 것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자신의 삶에서 행복을 찾는다.  그리고 가장 일반적이고 깊은 욕구는 사랑과 가족의 건강등이다.  당신이 하는 모든 것이 안전과 형화 그리고 당신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번영을 증진시킨다.  마음속에서 그렇게 열망함으로 인해 이러한 것들을 만들어내는 당신의 능력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믿음faith이라 할 수 있다.  믿음을 바탕으로 당신은 삶의 한 걸음 한 걸음 마다 기쁨joy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믿음 Faith

믿음이라는 것은 용기이다.  진리를 위해 생각들을 시험하는 용기이다.  믿음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발견하게 된다.  믿음이 있어야 사람들은 원리를 배울 수 있다.


사람들은 원리를 시험하는데 믿음을 사용한다.  우리는 종종 실패하지만 또한 우리는 늘 배움을 얻는다.


바위투성이의 땅을 걷는다고 상상해보자.  어쩌면 당신은 흔들리지 않는 탄탄한 땅을 예상했는지 모른다.  만일 탄탄한 땅을 예상했다고 한다면 당신은 움직임을 발견하고 넘어지게 될 지도 모른다.  당신이 생각했던 것들이 틀렸을 때 당신의 테스트는 실패한다.  당신은 지성을 갖고 있으므로 이를 통해 당신은 걷기의 원리를 좀 더 잘 이해해 생각을 고쳐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형이 험한 곳에서는 중심을 잘 잡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새로운 이해를 테스트하기 위해 믿음을 사용하고 드디어 바위투성이의 땅을 성공적으로 그리고 재빨리 건널 수 있게 된다.  당신은 원리를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원리들을 행동으로 옮길 때 마다 인간은 힘과 기쁨과 신나는 느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찾는 것은 지성이 현실화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면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신발끈을 묶는 법을 배웠다고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일이라던가 학생이 수학의 이해방식을 터득하는 일 그리고 남편과 아내가 다툼을 해결하는 일등, 이런 것들이 신념을 가지고 원리를 테스트함에 따라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다.


믿음을 원리에 대해 응용하게되면 지혜를 얻게 된다.


자유가 필요하다.  파괴당한 자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든다.  자유를 파괴당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들이 이해한 원리를 확인할 수 없게 된다.  우리에게 일보 전진할 자유가 없다면 우리는 배울 수도 없고 성장할 수도 없다.  사랑, 번영 그리고 지식같은 것들은 모두 자유가 있을때만이 오직 가능한 것이다.  자유는 모든것을 좋게 만든다.


인간으로써 당신이 필요로하는 자유의 정도는 무한한 것이어야 한다.  자유는 인간의 무한한 가치에 다름 아니다.  만약 악이 당신 인생의 어느 영역의 자유라도 파괴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지혜와 사랑 그리고 기쁨을 제한할 수 있게 된다.


위험 Danger

당신의 자유를 파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당신을 콘트롤하기 원하고 따라서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없게 된다.  당신을 콘트롤하기 위해서 그들은 당신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지배, 권위 등으로 부터의)자유liberty를 빼앗기 위해 강압력force을 사용한다.


당신은 악인들의 기량이나 잔인함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악은 돈을 몰수하려고 할 것이며 선virtue을 파괴하고 피를 흘리길 원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악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뭔가 창조해내려고 하지 파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악인들은 반드시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은 극도로 위험하다.


그들은 권위(또는 권력)authority라고 불리운다.


권위(또는 권력) Authority

당신의 삶을 정당하게 지배할 수 있는 권위라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땅에 태어나 오로지 당신 혼자만이 당신의 눈과 귀, 혀와 손 그리고 마음을 콘트롤 할 수 있다.  당신이나 당신의 능력을 없앨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는 모든 권위는 기만deceit이다.


이 땅에 태어난 것은 당신이며 따라서 당신만이 당신 삶의 자유행동권free agency을 갖고 있는 것이다.  삶은 자유liberty다.  이 세상에 자유와 믿음이 있어야 당신은 배울 수 있게 되고 어떠한 것이라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이나 육신 또는 소유하고 있는 어떤 것이라도 권위에게 내어 놓으라고 하는 그 어떤 사람은 바로 악이다.


당신의 자유의지로 선택을 내린다는 것은 악이 아님을 이해하기 바란다.  만일 그것이 자신의 의지에 의해 기꺼이 내어놓은 것이라면 희생이라고 해서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희생하지 않을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은 희생은 노예나 다름없는 것이 된다.  권위는 항상 강압적으로 사람들에게 요구한다.  권위는 결코 허가를 묻지 않는다.


불투명함 Obscured

가장 단순한 권위라고 하면 좀도둑을 예로 들 수 있다.  좀도둑들은 당신이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들을 갈취하거나 몰래 빼앗는다.  그들은 돈을, 강간으로 선을, 살인으로 생명을 빼앗는다.  그러한 행위를 통해 그들은 당신에게 당신의 가치는 그들에 비해 보잘것 없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들 권위의 도구는 폭력이다.


당신의 일상생활에 훨씬 더 강력한 다른 종류의 권위가 존재하고 있다.  그들은 극단적으로 더 위험하고 더욱 더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더욱 교묘하다.  그들은 왜곡된 생각을 당신에게 주입하여 당신이 능력이 없거나 자유롭게 살 가치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가르친다.  권위라고 하는 것들은 당신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인생을 관리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냉담하게 당신의 가치를 무시하면서 당신은 다른 누군가의 생각을 기초로 움직이도록 강요당한다.  이것이 위험한 진짜 이유는 이러한 명령 또는 강요가 선한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문화culture라고 알고 있다.


당신은 그러한 속임수가 당신이 가치를 두고 있는 모든 것에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만일 어떤 것이 당신에게 가치있는 것이라면 당신은 누군가가 어느곳에서건 그것을 빼앗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모양새가 일반적인 도둑과도 같은 악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정교한 문화의 방법론은 일반적으로 상당히 그것도 아주 커다란 위력을 지니고 있다.


악 Evil

악이란 자유를 파괴하는 것.


더 쉽게 얘기할 수는 없다.  당신이 어느 곳을 보더라도 악의 속임수obfuscation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악의 성질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수많은 견해들이 있다. 악이 만들어낸 잘못된 생각들은 모두 당신으로부터 진실을 감추려고 한다.


악은 어둠이 아니며 그것은 또한 알려지지 않은 위협도 아니다.  악은 인간의 어떤 신비스러운 심리상태도 아니고 우리안에 내재되어 전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초자연적이지 않은 확실히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이다.


모든 법칙principle과 같이 악의 법칙도 간단하다.  악은 자유를 파괴하는 것.  자유로울 때 당신은 세상에 영광과 평화, 번영과 기쁨을 이룰 수 있다.  당신 주위에서 이러한 것들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이룬 이러한 것들을 좋아할 것이다.


악은 사람을 노예로 만든다.  악은 무력force, 강요compulsion, 세금tax, 폭력violence, 도둑질theft, 불신임censure 그리고 정치politics라는 말 속에서 발견된다.  이러한 것들엔 기쁨joy이 없음을 주목하라.  인간성에 도움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통제 Control

악은 당신을 지배하려고 시시탐탐 노리고 있다.  악은 당신을 노예로 만들고 싶어한다.


진정한 "노예slavery"라는 것을 고려함에 있어 사실 한 가지 형태의 노예만이 있을 뿐이다.  미국에서의 아프리카 노예들은 노동과 다른 사람들의 이득을 위해 일할것을 강요받았다.  그들의 삶은 대부분이 주인의 이익을 위해 통제되었고 그들은 단지 매우 제한된 자유만을 갖고 있을 뿐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독특한 전통과 가족을 꾸릴 수 있기도 했었는데 그들위에 닥친 압제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 속에 기쁨을 만들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였다.


그렇다면 그들의 그들 삶의 일부분만을 통제당했다고해서 그들을 자유롭다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한 사람의 인간은 얼마만큼의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인가?  우리의 자유가 얼마만큼 파괴되어야 비로서 그것을 악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인가?


노예는 통합적인 개념concept of totality이 아니다.  노예는 인간의 자유가 파괴된 그 어느곳이던 존재하는 것이다.  도적질과 약자를 괴롭히는 일bullying은 노예상태와 같다.  역사적으로 아프리카 출신들과 유대인 그리고 많은 수의 사람들이 평생동안 노예상태를 경험했다.  살인murder이야말로 궁극적인 노예상태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삶 속에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에서부터 노예상태는 중단되기 시작한다.


당신의 마음과 움직임과 말하는 것을 제한하는 그 어떤 것도 악이다.  노예상태는 부분적으로건 전체적으로건 자유가 파괴된 모든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악은 당신이나 당신이 사랑하는 것들이 아무 도움이 안되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도록 강요한다.  문화와 법률은 공공의 번영과 선이라는 이름의 저항하기 힘든 힘으로 사람들을 연습시킨다.  그들은 자유를 파괴하고 안간의 삶을 어떤 사람들의 통제하에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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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벌번역이라 매우 거칩니다.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


Chapter 1

자유 Freedom


자유freedom를 인간이 가진 무한한 가치라고 정의하면 악evil은 그 자유를 파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악이 사람들에게 가르치고자하는 모든 것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인간은 한계를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단순함 Simple

진리truth는 언제나 단순하다.  모든 사람들은 지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진리를 인지하게 된다.  인위적으로 복잡한 개념ideas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악의 본질이다.  악은 자기가 없애버리고자 하는 자유를 은폐하거나 불명료obfuscation하게 만들기위해 복잡한 개념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삶에서 복잡함complexities과 공포fears를 없애버린다면 당신은 간결plain하고 아름다운 진리를 찾게 될 것이다.  이 진리야 말로 당신이 지닌 가치의 본질이다.


사람의 가치 Value of man

자유가 무엇인지 이해한다는 것은 한 개인의 가치를 이해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악이 오로지 원하는  것은 당신의 가치를 왜곡하고 파괴하는 것이다.  악한 사람들이 고안해낸 모든 종류의 권위authority는 당신의 가치를 왜곡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신 자신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배와 권위로부터의 자유liberty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악 Evil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악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악은 사람들의 가치를 부인함으로써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결정을 내리는 기회와 아울러 배움과 이해를 통해 강하게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려고 한다.


자유 Freedom

악이 개인의 가치를 파괴하거나 은폐하려는데 반해 자유는 인간이 가진 최대한의 잠재력과 궁극의 가치를 보려준다.  자유함으로 인해 사람들은 사랑하고 질병을 치유하며 배고픔을 없애고 노동에서 한숨돌리며 평화 속에서 살아왔다.  자유로움으로 인해 비로소 행복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자유는 악에대해 정확히 반대이다.


당신 You

이 책은 오직 문화culture와 법law의 개념을 파괴하기 위해 씌여졌다.  이 책의 교훈lesson은 간단하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당신보다 더 가치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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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공

2015. 7. 30. 19:45

묵공 墨攻

원작 사케미 켄이치

그림 모리 히데키

서현아 옮김 (시공사, 2014)


8권짜리 만화책으로 일본 소설가의 원작에 만화가의 작화로 약 2천 3백여년 전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묵자 혁리의 모험담을 그리고 있다.  책의 설명에 의하면 전국 시대에 반전론자들로 墨子(기원전 480~390년 경)의 뜻을 이어받은 이들이며 전쟁이 살인행위이며 사람으로써 최대의 불의임을 주장하며 묵자 교단은 성읍 방어전에 한정되어 오로지 '지키는 것'에 제한된 무보수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러한 묵가도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원래의 이상이 퇴색되고 야욕을 따르는 자들이 점점 더 생겨나게 되는데...


주인공인 혁리革離는 원칙을 고수하는 수성守城의 전문가로 묵가를 퇴색시킨 설병과 대립하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이 없는 자가 원칙을 고수하다보면 언제나 충돌이 일어나게 마련.  아니지, 원칙을 고수하는 자는 언제나 권력에서 먼 그렇지만 실력을 갖춘 사람일 때가 대부분이지.  하여튼 이 (만화)책은 그러한 혁리의 이야기다.  2천년 전이나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은 별로 다른 점이 없는 것 같다.  비슷한 일이 지금도, 그것도 우리나라 땅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비단 정치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종교계도 그다지 정치판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만화에서는 묵가라는 사상이 어쩔 때는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종교집단같이 보이기도 한다.  잔뜩 웅크리고 있다가 어느정도 힘이 갖춰졌을 때 슬슬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사이비같은...  물론 묵가 사상이 종교이며 사이비라는 말은 아니다.  포인트는 사람의 역사에서 대부분의 종교나 사상이 시간이 흘러가 계승되면서 본래의 뜻이 왜곡되고 변질되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일 뿐이다.  아무리 80년대 대학을 다니면서 학생운동에 독재정치타도를 외쳤다고 하더라도 나이를 먹어 어떻게든 정치를 시작하고 과거의 이력을 발판삼아 금배지를 한 번 달기 시작하면 예전과 같은 원칙에 충실한 진보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주변과 동화되어 별 다를 바 없는 행보를 걷는 그런 사람들.


나는 개인적으로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던가 하고 있지는 않지만 만일 세간에 알려진 모습이 그의 본 모습 그대로라면 나는 이 만화의 주인공 혁리와 고 노무현 대통령을 비교하고 싶다.  최대한 원칙에 충실하려 했던 그의 모습을 말이다.  공격하기보단 방어 위주로, 굽히기보단 끝까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에 충실했던 모습.  이렇게 주제넘은 비교를 한다면 고인에게 누가 되려나.


만화는 그렇게 혁리의 불굴의 정신을 끝까지 쭉 보여주다가 뜬금없는 결말로 마쳐버린다.  뭐 일본의 미화나 그런것으로 보기는 좀 그래도 혁리가 이상향으로 선택한 (혹은 선택된) 곳이 일본이라는 설정.  아무래도 일본의 역사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 비해 미천(?)하다보니 원작자의 상상이 좀 멀리 나간 것 같기도 하다는.  그래도 마지막 몇 장, 그냥 그러려니 애교로 봐줬다. 왜냐면 그 전까지의 내용이 상당히 재미있고 흥미진진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묵공은 끝이 나고 이 여덟권은 우리 애들이 좀 더 클 때까지 종이 상자 속으로 사라져 줘야겠다.  자칫하다 애들이 펼쳐보다가 목 잘리고 피흘리는 장면이 떡하니 나와버리면 좀 곤란하니까.  아마 10년쯤은 빛을 보기 힘들 것 같은데...과연...어떻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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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013)

2014. 2. 28. 15:15

28 (2013) / 정유정 장편소설 (은행나무)


근래 내가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한국 소설의 작가들은 천명관과 정유정.  작년에 정유정의 신작 <28>이 출간되었고 그걸 이제서야 읽었다.  전작 <7년의 밤>과 기본적인 느낌은 비슷하다.  기름기를 쪽 뺀 듯한 문체와 각 인물이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개의 관점까지 포함되었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여전히 굉장한 힘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었다.  여전히 재미있는 소설을 써내고 있었다.


<28>은 28일 동안 화양(아마도 火陽)이 아닐까)이라는 고립되어 버리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섯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개의 시점으로 그린 소설이다.  재난 영화라는 쟝르가 있듯이 쉽게 보면 재난 소설 아닌가 할지도 모르지만, 소설의 촛점은 재난과 그에 의한 상황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가진 등장인물들의 몸부림에 맞춰져 있어서 책의 띠지에 쓰여있는 것 처럼 오히려 드라마가 아닌가 싶다.  최근 <7년의 밤>이 영화화 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던데 과연 영화가 책만큼의 절박함과 광기를 그려낼 수 있을까 의문이다.  이 소설 또한 무척이나 비쥬얼적 느낌이 도드라지는 장면들이 있었다.  아마 영화 감독이 읽었다면 꽤나 드라마틱한 장면들을 머리 속에 그렸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28>을 <7년의 밤>과 비교할 것 같다.  개인 적인 생각으로는 역시 갑자기 등장한 괴물 같았던 <7년의 밤>에서 받았던 놀라움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칼 날이 파랗게 선 단도같은 느낌의 이야기는 역시 정유정의 스타일이 <28>에서도 여전히 살아있다고 본다.  역시 그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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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2013) / 무라카미 하루키 / 양억관 옮김 (2013, 민음사)


정말 오랫만에 읽는 하루키의 소설이었고, 2/3까지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이후 1/3은 밋밋하니 힘을 잃어 그냥 의무적으로 읽었고, 결국은 결말이 모호하여 나까지 힘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사물과 감정의 묘사에 있어서는 여전히 감을 잃지 않은 하루키선생이지만 역시 예전처럼 담장 너머까지 쭉쭉 뻗어 나가기에는 스윙 후 팔로우 업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책의 뒷면에 보면, '어느 날, 문득 떠올라서 책상 앞에 앉아 이 소설의 맨 처음 몇 행을 쓰고는 어떻게 진행될지, 어떤 인물이 나올지, 어느 정도 길어질지, 아무것도 모른 채 반년 가깝게 이 이야기를 묵묵히 써 왔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그래서 결말이 이런 것이었는가 싶기도 하다.


작가는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데 등장인물의 연령은 제자리이거나 젊어진다.  여전히 남자 주인공에 성격은 예전과 비슷.  스스로 무엇하나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있진 않지만 알고보면 언제나 특출난 구석이 있다던가 하는 그런 것.  특히 언제나 여자가 끊이지 않는다는 점은 하루키가 섹스를 단순 쾌락이 아닌 영혼과 영혼의 결합으로, 어떤 계시나 암시의 매개체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  여전히 수영을 열심히 하는 주인공.  등등...  이 사람의 소설을 읽고 있다보면 재즈바에서 칵테일을 홀짝 거리고 싶기도 하고 레스토랑에서 오무라이스를 먹어보고 싶기도 하고 한가한 수영장에서 자유형으로 왔다 갔다 해 보고 싶으며 어디론가 여행을 가고 싶기도 하다.  그 감성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작가도 대단하다.  나왔다 하면 베스트셀러에 진입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그 선인세가 대단하다고 하기도 하고, 뭐 몇 년에 한 번씩 새로 나오는 소설책이라면 사서 보기는 하겠는데 이제는 내가 나이가 들어버렸는지 젋은 시절 흠모하던 하루키風에 다시 휘말리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제목 때문인가.  읽고 나니 어쩐지 색채가 없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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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블러드머니 (Dr. Bloodmoney, 1965) / Philip K. Dick / 고호관 옮김 (2011, 폴라북스)


원제는 <Dr. Bloodmoney, Or How We Got Along After The Bomb>.  해설에 의하면 작가는 1964년의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의 패러디(혹은 오마쥬?)라고 한다.  그 영화는 아직 보지 않았지만 들리는 얘기는 상당히 괜찮다고...  하여튼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소설은 원자폭탄이 터진 이후 몇몇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특별한 클라이막스는 없고 그저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독특하고 작가가 전지적 시점으로 그들의 심리를 그려나가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게 무슨 얘긴데 이렇게 맥이 빠지나 하고 읽는 속도를 내지 못했었다.  아마도 인물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어렵고 배경에 대해 작가가 별로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게다가 60년대의 미국 소설이다보니 정서상 맞지 않는 면도 많았을 것 같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이 소설은 싸이언스 픽션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세태를 꼬집은 가상르뽀(?)식의 픽션이라고 하는게 옳지 않을까? 하긴 그런 쟝르 자체가 없으니 결국은 다시 SF쪽으로 돌아와야겠지.  그래도 계속 고집을 부려보자면, 영화쪽에서 보자면, 데이빗 크로넨버그나 데이빗 린치식의 그런류의, 무언가 좀 어긋난 듯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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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 Man's War (2005) / John Scalzi 지음 / 이수현 옮김 (2009, 샘터)


책의 띠지에 <파라마운트사 제작, 볼프강 페터젠 감독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화 확정!>이라고.  제목이 <노인의 전쟁>이라서 좀 맥빠지지 않을까 했었는데, 이 소설 일단 굉장히 재미있다.  책 끝에 옮긴이도 언급했듯이 로버트 하인라인의 <스타쉽 트루퍼스>를 재밋게 읽은 사람이라면, 개인적으로 첨언하여 올슨 스콧 카드의 <엔더의 게임>도 재밋게 읽은 사람이라면, 밀리터리 SF물에 거부감이 없는 사람이라면 아마 십중칠팔은 흥미롭게 읽을 소설이 아닌가 싶다.


일단 발상 자체가 색다르고 그 설정을 잘 이어나가는 것이 눈에 띈다.  소설에 등장하는 기술들도 꽤나 그럴싸 한 것이 정말로 그런 기술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적당히 자극적이기도 하고.  충분히 헐리우드에서 관심을 가지고 영화화하려고 할 대중적인 내용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1969년생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하니 역시 글을 쓰는 재주는 타고나야 하는 것이 대충 맞는 것 같다.


75세의 노인인 존 페리가 Colonial Defense Forces (CDF)라는 우주개척방위군에 입대를 하면서 그에게 벌어지는 일들, 예를 들자면 노인이 어떻게 군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과 우주에서의 <도약>에 관한 이론(?), 외계인에 관한 생각 등이 내게는 무척이나 흥미로왔다.  어쩌면 사람들에게 75세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소설에서도 나오지만) 두 번째 기회에 우주에서의 모험이라는 판타지가 더해지면서 (군 생활을 해본 유경험자로써 -_-;;) 독자들에게 어느정도의 대리 만족감을 주고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하고.  제목이 주는 부담감을 젖혀놓고 일단 읽기 시작하면 계속 읽게 되는 공상과학 소설이다.  오랫만에 취향에 맞는 소설을 발견했다.


이제 속편 <유령 여단>과 <마지막 행성>, 그리고 외전이라는 <조이 이야기>를 읽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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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용 (2006)

2013. 12. 29. 11:07

파피용 (Le Papillon Des Etoiles, 2006) / Bernard Werber 장편소설 / 전미연 옮김 (2007, 열린책들)


아주 오래 전에 '개미'를 읽었었고 '뇌'는 읽은 것 같기도 하고 나머지는 읽지 않았는데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새 소설이 나오는 족족 우리나라에서는 베스트셀러에 오르내리는 인기작가다.  어떻게 보면 이 사람의 소설은 순수문학이라기 보다는 쟝르문학에 가까운, 말하자면 SF의 냄새를 풍기는 판타지 소설쪽이다.  이 '파피용'도 역시 거대한 나비모양 우주선 프로젝트의 시작과 끝을 그리는 SF소설이라고 보여진다.  소설의 도입부와 중반부까지는 짧은 챕터와 빠른 전개로 인해 술술 잘 읽히는데 역시 끝으로 가면서 어쩐지 예측이 가능해지고 인류 및 동물의 창조에 대한 주제를 본격적으로 건드리면서 어쩐지 조금은 불편한 마무리를 하는 것이 아쉬웠다.  물론 작가의 상상력에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14만 4천명이라는 여행객에서 단 둘만 남긴다는 설정이다보니 그 144,000로 대표되는 인류의 되풀이되는 역사를 작가 개인이 풀어내다보니 어쩐지 다양성 면에서 흥미가 좀 덜했지 않았나 싶다.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지구와 비슷한 행성.  그 별을 꿈꾸며 천년을 항해하는 (왜 우주 비행을 대부분 '항해', 우주선을 'ship'이라고 표현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주선, 그리고 그 우주선 안에서의 일들.  어쩌면 지구는 그저 개념일 뿐, 그것이 지구건 JW-103683이건 파피용선이건 위치에 상관 없이 인간이 존재하는 바로 그 곳이 '지구'가 아닐까.


흥미롭게 시작했으나 아쉽게 끝나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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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pecial Relationship / Douglas Kennedy 장편 소설 / 공경희 옮김 (밝은세상, 2011)


'빅 픽쳐'의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한마디로 '빅 픽쳐'만은 못한, 한국인인 나로써는 미국-영국의 정서를 쉽게 이해할 수는 없었던 아이의 양육권과 법정에서의 공방전 이야기.  책의 뒷면에는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스피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개와 반전,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절묘한 마무리가 돋보이는'이라고 씌여 있지만서도 '숨 쉴 틈 널럴하고 스피드감은 약간 있지만 반전이 그리 세지는 않은, 탄성까지는 나오지 않는 그저 그런 마무리가 보통인' 소설이었다.  제 돈 다 내고 사서 읽었으면 후회했을 것 같은, 그저 한 작품이 인기를 얻으면 좋건 나쁘건 그 작가의 소설을 무조건 번역해서 과대포장하는 우리네 출판시장에 아쉬움만 더하게 하는 그런 책.  초반에는 읽다가 너무 졸려 낮잠까지 잤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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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unger Games (2008)

2013. 12. 12. 14:32


The Hunger Games (2008) / Suzanne Collins


가끔씩 하는 아이들용 북페어에서 싸게 팔았거나 공짜로 나누어줘서 집에 두 권이나 있던 헝거게임 제 1권을 읽어봤다.  나의 영어실력은 물론 소설 하나를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땅에 헤딩하듯 모르는 단어 수백개를 그냥 무시하면서 읽어내려갔다.  영화도 몇 년 전에 봤겠다, 속편도 몇 주 전에 봤으니 대충의 스토리를 꿰고 있었으니 이런 사실도 디테일은 무시하고 큰 줄거리만 따라가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다 읽고 난 후의 소감은, 일단, 역시나 원작소설이 영화보다는 재미있다는 것이다.  주인공 Katniss Everdeen의 District 12에서의 삶이라던가 게임 전 후의 감정, 그리고 소설 속에서의 Peeta는 영화에서보다 훨씬 더 멋있을 것 같다는 그런 점들.  사실 영화를 통해 시각적 이미지를 각인 시킨 후라서 아무래도 캣니스는 제니퍼 로렌스를, 피타는 조쉬 허처슨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는데, 명백히 조쉬 허처슨은 미스 캐스팅이라는 판단이다.  원작과 영화의 어쩔 수 없는 괴리이겠지...  그리고 소설과 영화사이의 몇 가지 차이점도 발견하였는데, 뭐 완전히 새로운 것들은 아니고 헝거게임 도중에 겪는 시련들, 피타의 부상 정도 등등이 잊혀져 가는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와의 다른 점들을 캐치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소설에서는 왜 대통령 Snow가 캣니스를 경계하는지 짧지만 이해 용이하게 설명되어 있다.  영화에서는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장면인데, 왜 캣니스가 Capitol에 암적인(?)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인지 헝거게임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반지의 제왕'도 옛날에 원작을 그냥저냥 읽고 나서 영화를 보고 다시 소설을 찬찬히 다시 읽었을 때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피터 잭슨의 영화도 상당한 퀄리티에다가 막판으로 갈 수록 스케일이 커지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흥미진진 한 것이 사실이었는데...  글쎄...'헝거게임' 시리즈의 나머지를 읽어보게 될 지는 아직은 미지수.  하지만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사가지고 읽어볼 용의는 충분히 있다.


...But the Hunger Games are their weapon and you are not supposed to be able to defeat it.  So now the Capitol will act as if they've been in control the whole time.  As if they orchestrated the whole event, right down to the double suicide.  But that will only work if I play along with them.

의미심장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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