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ath is Clear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1996) / 홍상수 감독


홍상수의 영화는 보기는 많이 봤는데 사실 기억에 확연히 남는 것은 별로 없고 솔직히 제대로 이해를 했던 것도 거의 없는 것 같다.  그저 영화가 영화답지 않게 날것 같아서 보는이의 얼굴을 남모르게 뜨겁게 만든다거나 참 뻔뻔하다 싶은 느낌을 많이 받았었을 뿐이다.  이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그런 홍상수 감독의 첫 감독 작품이라고 한다.  그리고 원작까지 있는데다가 각본은 여러명이서 공동으로 작업하였다.  1996년이니까 내가 뒤늦게 군대를 제대하고 직장에 들어간 해다.  벌써 17년이나 되었다.  그래 당시에 삐삐도 아직 심심찮게 있었을 때고 아직 서울 구석구석에 동네 극장들도 남아 있었을 때였던 것 같다.  예쁘긴 예쁜 이응경과 홍상수 영화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다소 뻔뻔한 안면의 김의성 (죄송.. ^^;;), 얼굴이 좀 달라 보이는 신인시절의 조은숙, 그리고 이제는 추억의 탤런트가 되어버린 박진성까지.  네 사람의 주인공이 이렇게 저렇게 얽히고 섥혀서 술마시고 섹스하고 싸우다가는 어떻게 어떻게 되는 것 같은 그런 이야기.  이후의 홍상수의 영화들 보다는 유머감각은 없는 것 같다.  인물들 관계의 생성과정은 역시 과감히 생략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그럴 것이라고 추측을 하게 만들어 놓고 가끔씩 인물 각자의 속마음 같은 것을 슬쩍 보여주는 듯 싶다가도 또 그런가 싶으면 애매하게 뭉뜽그려 놓는 방식은 감독이 처음부터 추구하던 방식이었나 보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 가장 솔직해야 하지만, 막상 혼자 있게 되었을 때에 본인의 솔직함마저도 쉽사리 참을 수 없는 부조리한 모습.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보경(이응경 분)이 자신의 장례식을 꿈꾸는 에피소드.  상주에게 밥을 먹이려고 조문객을 막는 보경의 친구의 모습, 라면을 끓여 먹는 남편 동우(박진성 분)의 모습, 친구는 죽은 친구의 남편에게 뭔가 귓속말을 하고, 애인의 장례식에 다른 여자를 데려오는 효섭(김의성 분), 장례식에서 케익을 잘라먹는 사람들...  의미는 애매하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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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미로 (1970)

2013. 11. 22. 11:48


A Maze of Death (1970) / Philip K. Dick / 김상훈 옮김 (폴라북스, 2011)


필립 K. 딕 걸작선 제 2권.  '죽음의 미로'.  지난 번 읽었던 '화성의 타임슬립'과 마찬가지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우왕좌왕하는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에는 (아무래도) 작가의 종교관 같은 것들이 녹아 들어가 있는데, 소설의 말미에 친절하게도 그 종교관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를 얘기해 주고 있다.  소설에서 '신'을 다루게 되면 SF가 아니라 오히려 판타지에 가깝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근래 탐 크루즈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해진 싸이언톨로지 같은 경우는 알기론 신이 아니라 과학기술을 신봉(?)한다고 하니 어쩐지 과학은 신으로 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필립 K. 딕은 이 소설 '죽음의 미로'에서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내면서 그 한 가운데 종교와 신을 가져다 두었다.  어떻게 보면 살짝 고리타분하고 괜한 억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불가사의한 신에 대한 호기심을 표현했다고 하면 뭐 나름 흥미로운 면도 없진 않다.  추리소설과 SF소설에 신학을 좀 가미하여 (현재 나의 눈으로는) B-급 감성의 적당한 소설을 만들어 낸 것 같다.  역시나 필립 K. 딕 답게 마지막의 소소한 반전도 매력적이다.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봤던 영화 'The Imposter'의 장면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이 사람은 꽤나 허무한 사상을 가졌었구나...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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